티스토리 뷰
오래간만의 평화, 고요, 안식. 이상하게도 달디 단 평화임에도 어딘가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의 동거인이 몇 번 바뀌는 동안 해도 바뀌었다.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하면서 태양이 뜨는 주기도 바뀌었더랬다. 사내는 그제야 문득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이번에는 혼자였다.
[리슈타르] 한참만의 귀가
“하고 싶은 건 당연히 해 봐야지. 듣고 있니?”
“어머니.”
“응?”
자신을 바라보는 똑같은 색의 눈동자를 마주하고서야 사내는 눈을 꿈뻑거렸다. 가족과 보내는 긴 휴가가 이리도 낯설 줄이야. 13년간, 제대로 된 시간도 갖지 못하고 보내왔다는 증거 같아서 헛웃음이 났다. 전과는 다르게 눈가에 살짝 주름이 잡힌 모친의 무릎에 아이처럼 머리를 부비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이렇게 되기까지 13년. 야속하게 시간이 계속 흐를수록 점점 더 주름살은 늘고, 함께하지 못하는 골은 깊어지겠지.
하지만 자신도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은, 그럼에도 결국 그녀는 당신의 아들을 늘 응원하고 그 등을 떠밀어 줄 것이란 것이다. 그리고 어릴 때는 든든해 보였던 부친이 이제는 무릎을 꿇어야만 그 품을 끌어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음에도, 여전히 그 역시도 자신을 지지해 줄 것이란 것을.
정작 지키고 사랑해야 할 것들을 지나쳐 눈앞의 연정과 사랑만을 쫓아서 달려온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자신의 부모는 절대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친 손으로 등을 쓸어주며, 엉덩이를 툭툭 다독이면서 어릴 때와 같이 무언으로 응원하고 있었다. 이 손마디 손마디가 리슈타르 자신에게 주었던 애정과 용기를 가슴에 그득 담고, 두 귀를 쫑긋거렸다.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어요.”
“넌 우리의 결실이야. 우리가 사랑해서 태어났기에 사랑의 결실이 된 것이 아니라, 네가 태어났기에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그것이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렇지, 슈. 네 엄마를 봐. 여전히 아름답고 용맹해. 너도 다 컸지만 아직은 물에 내놓은 아이 같은 게 멀었다.”
자랑스러운 아들이고 싶어요.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고 싶어요. 언제나 당신들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접은 부분은 황금향 메인 퀘스트 완료 후 읽을 것을 권합니다. 스포일러 존재.)
그래서 사내는 터미널들의 불이 하나씩 꺼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 기억, 그리고 지우고 싶지 않은 시간들. 영원히 남김으로써 존재하길 바라는 소망. 하지만 나아가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사람도, 시간도, 그 어떤 존재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나아가려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생명은 그렇게 순환되고 이어진다. 자신도, 자기 부모도, 자신이 사랑할 누군가도 죽어서 사라지게 될 테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지나갈 순간을 기억에 새겨 다시 또 누군가가 태어나고, 나아가게 될 것이다.
이 땅에 자신이 부모의 의지와 사랑을 받고 살아와 걸었던 것처럼.
인생의 황금기. 가장 아름답고 가장 찬란한 시기가 있다면 그것이 막을 내리는 날도 있어야지. 그렇게 사람은 사는 거야. 그래서 먼저 간 이를 슬퍼하고 기억의 저편, 별바다가 있을 곳으로 흐르게 두는 것이야말로 생명을 잇는 것이라고.
“어렵긴 하겠네…….”
하지만 ‘너’는 반드시 그 불을 꺼야만 하고, 그럴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13년간 지켜봐 온 유대와 신뢰가 말했다. 끄고 돌아가야 하는 거야, 일상으로. 너의 집으로.
“집에 가면 간만에 송어구이를 먹을까.”
햇병아리 시절에 아무것도 모르고 선물 받아 질리게 먹었던 그 구이도 지금 먹으면 색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사내는 작게 웃었다.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 있어야만 아름다운 것이야. …그렇게 생각하지? 너도. 추억할 수 있는 ‘과거와 지나간 이’들이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계속 회상하고 사랑할 수 있는 거야.
“안녕히 주무세요.”
“잘 자, 우리 슈.”
분명 내가 당신들을 배웅하게 될 테지만, 그래도 나는 자랑스러운 당신들의 아이로서 계속 걸어 나가겠노라고. 사내는 자신을 향해 미소 짓는 두 사람의 얼굴을 한참이나 일렁이는 옅은 금빛 눈에 한참이나 품고 있다가 뒤돌았다. 너무 철이 들었어. 예전부터 슈는 철이 들었었다고요. 모친과 부친의 작은 속삭임을 자장가 삼아 간만의 숙면을 위해 사내는 방으로 들어갔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 아버지. 일어난 뒤에는 옆 대륙에서 먹어본 타코라는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해야지.
오늘 밤은 왠지 악몽을 꾸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1차 > 연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원 (切願) 상 (0) | 2024.05.30 |
---|---|
[샤마쉬] OUTSIDER (0) | 2024.05.22 |
[지혁재원] 야식 (0) | 2024.05.14 |
[샤마쉬] 와카신 티아의 증명 (0) | 2024.05.13 |
[사야호브] 꿈이 잊힐 때까지 문제는 뒤로 젖혀둬. (0) | 2024.04.25 |